K. Penderecki: Kadisz


폴란드의 암울한 근대사는 18세기 말 러시아와 프러시아, 오스트리아가 폴란드를 분할통치하면서 시작되었다. 19세기에는 지도상에서 사라진 폴란드라는 이름을 되찾기 위해 여러 봉기도 일어났지만, 매번 무자비한 유혈진압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쇼팽은 이러한 민족의 독립에의 열정을 피아노곡 <혁명>에 담았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되면서 폴란드는 비로소 독립할 수 있었다. 1919년 6월 28일 폴란드의 독립을 선언하는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한 폴란드 임시정부의 수상은 바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Ignacy Jan Paderewski)였다.

그러나 독립의 기쁨은 잠시,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알리는 첫 포성이 폴란드에서 울렸다. 나치의 군대는 폴란드 구석구석에서 대학살을 자행했고, 아우슈비츠를 비롯하여 곳곳에 집단학살 수용소를 세웠다. 전쟁 기간에 폴란드인은 약 600만 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당시 전체 인구의 1/5이나 되는 숫자였다.

1945년 이 비참한 인류 최악의 전쟁이 끝나자, 나치 군대를 물리치면서 들어온 소비에트가 그대로 공산정권을 세웠다. 런던에 있던 폴란드 망명정부를 무시하고, 또한 선거를 통해 폴란드의 민주적인 재건을 이루게 하겠다는 미국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었다.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가가 됐고, 악랄한 스탈린의 통치를 받으며 정치, 문화, 종교 모든 것이 지워져 갔다.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1933)는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폴란드가 잠시 독립했던 시절, 그의 고향인 남부의 소도시 뎅비차(Dębica)의 아름다운 마을을 기억한다. 하지만 곧 히틀러 치하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스탈린 치하에서 10대를 보내면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과 이념의 갈등으로 인한 공개처형을 목격했다. “그 광경, 그 마지막 순간의 고통은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외삼촌들도 한 명은 나치에 의해 파비악에서, 또 한 명은 소련에 의해 카틴에서 목숨을 잃었다. 어린 시절에 각인된 비극적인 경험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의 음악에 스며들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인간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 그리고 삶이라는 숭고한 가치에 대한 고민이 평생 떠나지 않았다. 2009년 폴란드 제3의 도시 워치(Łódź)로부터 유대인 수용소인 게토 해체 65주년 기념 작품을 위촉받았을 때, 그는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삶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고민을 ‘카디시’라는 이름에 담아, 죽음과 망국의 고통과 삶과 구원의 희망, 그리고 신을 향한 기대와 찬양을 노래했다. 그런데 그는 <누가 수난곡>(1966)도 아우슈비츠에서의 고통과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카디시>(2009)에서 들려주는 슬픔의 표현은 40여 년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린 시절에 직접 목도한 비극에 대한 감정을 생생하게 재현한 듯한 무조성과 소음 등을 활용한 극단적인 극적 표현은 자제하는 대신, 불안감이 감도는 불협화음과 바로크적인 대위법, 성격이 뚜렷한 성악 파트 등은 물려받았다. 그리고 ‘카디시’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유대인의 기도문인 만큼, 유대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 또한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러한 다양한 음악적 특징들과 함께 노래, 낭독, 합창, 기도로 각 악장의 특징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극적으로 대비되도록 했다.

1악장 ‘장송행진곡의 빠르기로’는 소프라노가 아브람 시트린(Abram Cytryn)의 시를 노래한다. 시트린은 시를 썼을 당시 게토에 있었던 15세 소년으로, 2년 후 아우슈비츠에서 세상을 떠났다. 날카로운 타악기의 행진곡 리듬을 배경으로 음산한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시작하고, 이어서 목관과 현악의 연주와 함께 슬픔을 머금은 관조적인 태도로 죽음을 바라본다. 이제는 슬픔마저 일상이 된 듯 목관과 현이 지치고 절망 어린 연주를 들려주고, 갑자기 죽음에 대한 거부로 고조되면서 삶에 대한 희망을 폭발적으로 외친다.

2악장 ‘무겁고 느리게, 고정된 마디 없이’는 지옥에서 들려오는 듯한 금관의 어둡고 무거운 팡파르와 함께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한 예레미야의 애가 2장 21절과 3장 53~55, 59, 64~66절을 낭독한다. 그리고 합창이 가세하여 55절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라고 외친다. 낭독이 마치면 클라리넷이 나지막이 유대 풍의 선율을 외로이 연주한다.

3악장 ‘매우 조용히’는 가톨릭 성서의 다니엘서 3장 34, 35, 37절에 기록된 세 청년의 기도를 무반주 남성 합창으로 연주한다. 금으로 만든 신상에 절하라는 왕의 명령을 어겨 불 속에 던져진 그들은 불 속에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유서 깊은 성당에 어울릴 듯한 중후한 성가의 분위기로 가득하며, 불안한 불협화음이 절묘하게 협화음으로 해결되는 순간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4악장 ‘고정된 마디 없이’는 유대교의 기도문 ‘고아의 카디시’(kaddish yatom: 혹은 ‘애도자의 카디시’라고도 한다.)의 히브리어 원문을 전통적인 유대교 방식으로 읊는다. ‘고아의 카디시’는 사실 고아와는 관계가 없으며, 11세기 제1차 십자군 전쟁 당시 미성년자들이 기도문을 낭독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의 삶에 풍족과 평화가 오기를 기원하는 기도문을 현악기의 조용한 연주를 배경으로 낭독하고, 신도들의 회중을 상징하는 남성 합창단의 응창은 시나고그에 온 듯한 현장감마저 느껴진다.

이 곡은 2009년 8월 29일 워치에서 작곡가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유구한 인류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는 만행을 되돌아보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참상이 멈추기를, 그리고 앞으로 또다시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이 곡을 들으며 서울국제음악제가 서원하는 ‘우리를 위한 기도’를 모두 함께 드리자.

글 | 음악평론가 송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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