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Debussy - Sonata for Flute, Viola and Harp, L. 137

프랑스 태생의 드뷔시는 독일음악이 지배적이던 후기 낭만주의 시대에 반기를 든 작곡가다. 자유분방한 그는 평생 틀에 박힌 것을 거부하는 한편 고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1884년, 22세의 드뷔시는 칸타타 <탕자>로 당시 작곡가들의 최고의 영예였던 로마대상을 수상했는데, 부상으로 주어진 로마의 유학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돌아왔다.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독창적이고 새로운 음향 세계를 펼쳐 보인다. 드뷔시는 한때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바그너를 이전 시대에 종속된 음악가로 보고 그 영향에서 벗어나 고유한 음악언어를 확립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드뷔시는 각각의 화음을 독립적 표현력을 가진 개체로 다루었으며, 각각의 악기가 가진 독특한 음색의 특성을 부각하고자 했다.

악기 구성이 이채로운 <플루트, 비올라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는 1915년, 말년의 드뷔시가 작곡한 작품이다. 19 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암으로 투병하던 드뷔시는 한동안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조국 프랑스를 향한 애국심은 무기력을 떨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병세가 악화되는 가운데 드뷔시는 마지막 창작열을 쏟아내 중요한 피아노 작품들과 실내악 소나타들을 남겼다. 실내악 작품은 1893년 이후 20여년 만에 다시 손을 댄 장르로, 원래 다양한 악기로 구성된 6개의 소나타를 작곡하려고 계획했다. 그러나 모두 3개의 소나타만을 완성했는데, 1915년에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와 <플루트, 비올라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를, 1917년에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완성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드뷔시는 이 세 개의 소나타 표지에 이렇게 분명히 밝혔다. ‘클로드 드뷔시, 프랑스 음악가’. 여기에는 전쟁과 질병, 혼돈과 쇠약 속에서도 의미와 용기를 잃지 않고자 했던 그의 투지가 담겨있다.

실내악 소나타 중 2번째로 작곡한 <플루트, 비올라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는 모두 3개의 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작품에 대해 드뷔시는 웃을 수도 없지만, 울 수만도 없는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우울과 희망이 오묘하게 공존하는 이 작품은 소나타라고 명기되어 있지만 독일식 음악 문법의 지배에 얽매이지 않는다. 형식 뿐 아니라 표현에서도 웅변조가 아니라 마치 숨 쉬듯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가라앉는다. 전반적으로 빠르기, 박자, 리듬 등이 자주 바뀌지만 극적 과장 없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1악장 ‘목가’는 F장조 위에서 여리고 느긋하게 펼쳐지는 하프와 플루트, 신비로운 비올라 선율이 어우러져 몽환적 분위기를 만든다. 곡은 3부분으로 나뉘는데, 중간에 밝게 활기를 띠는 부분이 나온 후에 다시 첫 부분이 반복된다. 2악장 ‘간주곡’은 ‘미뉴에트의 빠르기로’ 표기돼있는데, 춤곡이지만 F단조로 진행돼 생기 있으면서도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3부분으로 구성되며, 중간에 B장조의 약동하는 트리오가 있다. 3악장 ‘피날레’는 빠르고 힘차게 전개되며 분위기가 확실히 전환된다. 역시 3부 구성이며 다소 긴박하게 전개되는데 끝 부분에서 첫 악장의 선율을 회상하며 여운을 남긴 후, 마지막 2마디에서 위트 있는 반전을 선보인다.

글 | 음악평론가 서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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